마르코폴로 한국견문록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교수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10-23 09: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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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교수
중국에서 17년을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간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가져온 진기한 보물들을 팔아서 거부가 됐고 손꼽히는 인물이 돼 호사스런 생활을 누렸다. 

그러다 제노아 군대가 베네치아를 침공하자 전쟁터에 나서서 싸우다가 포로로 잡히게 된다. 

그는 무료하고 지루한 감방에서 2년을 지내면서 약 20년의 중국생활을 회상하게 되고, 이렇게 해 그 유명한 <동방견문록(1300)>의 저술이 시작된다. 

14세기로 마악 접어들면서 쓰여진 이 책은 서양인들에게 중국에 대한 많은 호기심을 충족시켜 줬다. 

마르코 폴로는 당시 중국(원나라)의 번영을 극찬하고 항주야말로 최고의 도시라고 말한다. 

항주는 수많은 시장을 가진 번영한 도시였다. 그는 중국의 잘 기획된 도로와 석탄사용, 지폐 제조과정과 유통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마르코 폴로를 놀라게 했던 것은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약자들에게는 한 해 동안 사용할 양의 곡식과 의복을 왕이 지원해 줬다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특히 황궁에는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한 곡식이 늘 준비돼 있어서 먹을 것을 얻으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빈민이 없음을 기록했다.
 
절대 왕정인데도 백성의 편안한 삶을 위해 정부가 얼마나 온 힘을 다하는가를 보면서 서양인 마르코 폴로는 상당히 놀랐던 듯 하다. 

하지만 조선의 향약제도를 알았다면 그는 아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향약은 비록 전국적으로 시행되지는 못했지만 몇 몇 학자들에 의해 국지적으로 시행됐다.

향촌인들의 약속이란 뜻을 지닌 향약(鄕約)은 중국 송나라의 여씨향약이 처음이고 이후 주자가 증보했다.

조선의 대학자 율곡선생은 은퇴하고 해주에 기거했다. 해주가 처가였기 때문이다. 

선생은 해주에서 향약을 만들어 보급했는데, 그것이 바로 ‘해주향약’이다. 

향약의 구체적 조항에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이란 게 있다. 

정부 차원에서 구석구석 챙기기 어려운 일들을 사정을 잘 아는 이웃끼리 도와주는 일이다. 

몇 가지 조항을 소개해 본다. 

상사(喪事)를 당한 집안이 지극히 가난해 장례를 치를 수 없을 때에는 여럿이 의논해 재물로 도와준다. 

또 구성원 중에서 가난을 참고 분수를 지키는 이가 있는데, 생계가 힘들어 먹을 것이 끊어지는 일이 있으면 서로 재물로써 구제한다. 

나이 어린 아이가 부모를 잃어 의탁할 곳이 없는 경우, 만약 그 집에 재산이 있을 때는, 그 친족 중에서 정직하고 신실한 이를 택해 일을 주관하게 하고, 그 재산의 출납을 보고한다. 

친족 중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동네 사람 중에서 친절한 이가 맡아 돌보게 한다. 이웃이나 마을에 혹시 급한 일이 있으면, 먼저 듣고 아는 사람이 마땅히 구조하며, 혹시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사람들에게 알려 구조하도록 한다. 

‘환난상휼(患難相恤)’은 이처럼 마을 구성원들을 재난에서 구제하고, 질병에서 구조하며, 가난과 상사(喪事)를 도와주며, 고아나 약한 자를 부양하는 일들을 도모하도록 한 조항이다.

백성을 챙기고 보살피는 것은 옛 한국과 중국의 전통이었다. 

군주는 아버지의 위치이고 백성은 자식의 입장이니 굳이 사회보장이니, 복지니 하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아버지와도 같은 하늘은 백성들의 눈을 통해서 보고 백성들의 귀를 통해서 듣는다. 

하늘이 온 만물을 적시고 가꾸듯 임금도 온 백성을 보살펴야 한다. 그래서 맹자도 사랑의 정치[仁政]를 역설했다. 

공자와 맹자가 추구한 세상은 대동(大同)의 세계였다. 

대동의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정치적으로 신의의 기강이 있으며 사회구성원이 서로 아끼고 사랑해 화목한 사회,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복지가 구현된 사회를 뜻한다. 

특히 동양전통의 정치적 시각은 홀아비, 과부, 고아, 홀로된 노인같은 외로운 이들과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우선적이고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
 
자유와 민주, 복지를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현재는 어떤가? 곳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탄식과 비명이 들린다.

홀로 살다가 고독사하는 사람들, 아픈데 돈이 없어 병원 응급실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 자유를 찾아 왔지만 돌봄을 받지 못해 굶어죽은 가족, ... 

우리는 이웃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정부의 복지 예산은 눈먼 돈이 돼가는 성 싶다. 

누군가는 특권과 특혜에 정신 못 차리고 또 누군가는 기본적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사그러져 간다. 

14세기 마르코 폴로가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 오면 무엇을 보고 느낄까? 예전처럼 화려한 서울의 외관과 동시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모두 둘러 볼 것이다. 

문득 조선시대 율곡선생의 해주향약이 그리워짐은 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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