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서평] 소설 ‘이제 일어나서 가자’를 읽고

"아픔도 가꾸면 반짝인다" 김응순 시인
민순혜 기자 | joang@hanmail.net | 입력 2021-09-23 11:20:46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시인 김응순 

 

작가 약력- 충남 서산출생, 현 대전 거주.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4년 창조문학 시조 부문 당선. 제2회 대한민국소설독서대전 동상 수상 등

 

아픔도 가꾸면 반짝인다

                               시인 김응순


코로나19로 방콕 신세가 되어 시집 몇 권과 소설책 몇 권을 주문했다. 그 가운데 '이제 일어나서 가자'라는 소설책은 어서 다시 일어나 자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염원이 무의식중에 작용하여 선택되었다. 그런데 첫 문장부터 차갑고 경직된 어조였다.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나의 해원(解冤)의 간증,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하는 호기심과 함께, ‘한 광신도가 휘두른 광기어린 칼날에 삶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글귀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이 소설은 종교뿐만 아니라, 8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요 사건을 광범위하게 반추하면서, 국가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이며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화두로 던진다.


문제의 발단은 기독교 사립학교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말이 곧 법이라는 이사장 앞에, 주인공 강청은 신앙적으로 바른 말을 했다는 사유와 또 불교 수험생을 불합격시키라는 지시에 부당함을 역설했다는 사유,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렀다는 문제까지 불화가 되어 광신도인 이사장의 미움을 사게 된다. 이후 재임용 심사 때 결국 강청은 교수재임용심사에서 부당하게 탈락한다. 그로 인해 그는 온갖 수모와 고통을 끌어안으며 22년 동안 질곡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한다.


강청은 그 고통의 삶을 겨울로 표현한다. 여한을 풀지 못한 원귀처럼 오랫동안 생존의 끈을 붙들고 신음하던 그 매서운 겨울, 실직! 곁에 있는 아내마저 냉정하게 얼음덩이로 변해가던 그 겨울, 말이 이십 이년이지 참 끈질긴 삶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인공 강청은, 유신정권하에서 교수기간임용제의 특별법의 실효성을 들먹이며 딴청만 부리는 교육부와 오랜 재판과 투쟁 끝에 승소하여, K대학에서 다시 5년의 남은 정년을 봉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제자 연주와 세월호 참사를 겪게 되고, 그녀의 약혼남이며 역시 제자인 용주, 다혜와 아픔을 함께하며 우리 시대의 불의와 그 해결책을 고뇌한다. 그리고 『이제 일어나서 가자』라는 소설로 용서의 해원(解冤)을 한다.


가장 주된 화두는 종교의 정체성이다. 광적인 종교집단들이다. 신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해 강청은 파스칼이나 니체, 칼라일의 말도 인용하면서, 진정한 종교는 예수나 부처나 근본은 하나라고 설득한다. 진리는 마음속에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비와 사랑은 하나이며 그것은 배려와 베풀음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주 만물을 축소시킨다면 신일 것 같고, 신을 확대시키면 사랑, 연민, 즉 용서라며, 종교를 어느 땐 부정하는 색깔이 짙다가도 어느 때는 그가 기독교의 부흥강사보다도 더 성경말씀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고, 구구절절 성경구절과 부처님의 경전을 인용하며, 종교는 큰 틀에서 보면 하나라는 것을 강청은 거듭거듭 강조한다.


또한 부조리한 현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숙이 파고든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국민의 분노가 표출했던, 헌정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인용이다. 이처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인 부패와 사학비리와 법조계의 실상까지 여러 가지 무거운 주제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물론 당대의 문제가 되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정치적, 종교적인 예민한 부분들에 독자들이 주목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한다. 그러기에 그동안 울안에만 갇혀 살았던 나도 역시, 아직도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는 그 사건들을 다시금 냉정한 시각으로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사건의 서술방식과 등장인물들의 기발한 적재적소(適材適所)의 배치다. 처음에 몇 장을 넘기다 예기치 않은 개 싸움 장면에서 이게 뭐지? 하고 의아심이 들었다. 무거운 주제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기르던 개들을 삽입하여 시작부터 흥미롭게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다. 무거움 속에 가벼움으로 처음부터 폭소를 터트릴 수 있는 마력까지 담겨 있었다. 거기다 뚜렷한 개성과 질박한 인성을 부여한 노총각 이한용과 신기가 들린 봉순이와 강청 간에 오고가는 대화들도 해학적인 말투가 섞여 더욱 정감 있게 다가왔다. 아무튼 이런 장치들은 읽는 내내 연민과 공감을 이끌어 내며 그들의 대화 속으로 사정없이 빨아 들였다.


세월호 같은 무거운 주제도 제자와 주(酒)님을 모시면서 때때로 부흥회를 열고 있다는, 농담 같은 풍자로 아픔의 응어리를 유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가족공동체가 무너지는 과정도 비교적 자신의 삶을 사실적인 터치로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불행과 고난에 대해, 때로는 부당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좌절에 대해 생생하게 말하면서도 치기어린 감성을 배제한다. 누이의 빚보증으로 인해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에서,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노련한 대화체로 풀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도록 장치해 놓고 있다. 결국 혼자가 되었을 때, 그 외로움을 함께 달래던 개들과 끝까지 동행하려고 애쓰는 그의 심리상태와 선한 심성도 잘 그려내고 있다. 아무리 반듯한 가정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된 것도 나에게는 의미가 크다.


특히 책속에서 절실하게 나에게 와 닿은 대목은, 〈조선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이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량치챠오의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분노하고 열망했던 지난 열정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나약했던가를 자성해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세상의 불의에 과감히 맞섰던 주인공 강청 때문에, 어둠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아픔을 승화시켜 삶의 소중한 꽃을 아름답게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을 공명하게 만든다.


또 하나 나의 상처를 위무하면서 감동으로 묵직하게 다가온 말이 있다. 용서는 타인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용서받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세상은 주인공 연주가 말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고 하지 않는가?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바라보면 어쩌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강청의 이런 말 때문에 나는 영원한 그의 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가게 보증금을 떼먹고 도망 가버린 그 주인여자를, 이제는 어차피 지나간 일, 미움의 사슬에 칭칭 감겨 더 이상 그녀를 저주하지 말고, ‘그녀에게도 뭔가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배려의 마음으로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겠다.


이 소설의 소주제이기도 한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연주를 잃고 솟구치는 울분과 분노를 냉정하게 삭이면서도 홀로 애절하게 연주를 그리워하는 용주, 그보다도 연주와의 사랑을 끝까지 지키려는 용주의 헌신적인 사랑의 승화는, 위선과 아집으로 많이 변질돼 버린 세상에서,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유회의 수단이 아니라, 혹독한 역경 속에서 고뇌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버텨내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연주와 용주의 고결한 사랑이야기는 그래서 경이로웠다.


강청이 주장하는 무애교(無碍敎). 모든 종교와 이념을 떠나 곤고한 자의 편에 서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종교, 진정한 마음의 낙원, 희망 나눔 동산. 그 동산을 찾아가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 때문인가? 아픔도 가꾸면 반짝이고, 이 순간에도 우리에겐 희망과 염원이 있다지 않는가! 라는 말 때문인가? 그래, 이제 우리 모두 코로나19를 이겨내고, 그 어떤 아픔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서 가야 한다. 

 

-소설 ‘이제 일어나서 가자’를 읽고

 

[저작권자ⓒ 세계로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naver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민순혜 기자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