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강의 땅따라 물따라] 곽재우(郭再祐)와 곽상도(郭尙道)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21-11-13 12: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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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장군 곽재우

 

얼마 전 개인적인 사무가 있어 대구 출장을 가게 됐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달성구에 위치한 홍의장군 곽재우 묘를 답사했다. 호화롭게 단장된 묘로 생각했지만 평장에 가까운 서민적인 묘로서 낙동강을 바라보고 계셨다. 곽 장군께서 임종이 가까워지자 “내가 죽거든 구덩이에 묻기만 하라!”라고 했다.

곽 장군은 일찍이 의령출신으로 조국(曺國) 장관의 방조(傍祖)인 남명 조식(曺植) 선생 문하에서 공부했고, 그 인연으로 조식의 외손녀와 혼인했다.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무인 출신은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전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켜 초기에 의령을 중심으로 거름강(岐江) 등에서 유격전을 펼쳐 최초의 승전고를 울렸다. 그리고 김시민의 진주성 전투에 선봉장으로 200여 명을 이끌고 참전해 진주대첩의 승리에 지대한 공을 세워 절충장군이 됐고, 후에 성주 목사가 됐다. 임란 후 조정에서 선무공신(宣武功臣) 심의에서 제외됐어도 개의치 않고 고향에 현풍에 낙향해 비슬산 아래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도인처럼 살다가 66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곽 장군 묘지를 나오는데, 마침 ‘곽상도 사직안’이 국회 본회에서 처리되었다고 SNS에 떴다. 아마 곽상도는 현풍 곽 씨의 직손(直孫) 혹은 방손(傍孫)계 후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곽 장군은 국난위기에 구국창의(救國倡義)하여 역사에 위인이 되셨고, 그의 후손인 곽상도는 민정수석, 국회의원 등 지도층으로서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개인의 명성이 실추됐다.

곽상도는 검사 임무수행 중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무죄판결로 명예가 떨어진 바 있으며, “화천대유서 아들 50억 퇴직금 수령”으로 며칠 전 국회에서 사직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조상의 얼이 빛난 곽재우 장군의 정신의 1/3만 이어받았어도 저런 불행한 사건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곽상도(尙道; 도를 숭상하며 살아라) 자신의 이름처럼 살았어도 그의 명예는 영원히 빛날 수 있었을 것이다.

《논어(論語)》에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란 말이 있다. 즉시 고치면 된다. 

공자께서 “소인지과필문(小人之過必文 소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반드시 변명하려고 한다)”이라고 말씀하셨다. 

변명만 늘어놓으면 국민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50억 아들 퇴직금”과 관련 계속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파멸의 길이요, 영원히 버림받을 수도 있다. 

솔직히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개인의 명예를 살리는 길이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이미지도 달라지지 않는다. 

변명이 두렵다면 대구 달성구 ‘곽재우 장군 무덤’에 가서 참배하고 물어보시라고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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