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바쁘다!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12-24 1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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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배우 안성기가 출연한 한중일 합작영화 ‘묵공, 2006’은 춘추전국시대 뛰어난 과학자이자 기술자, 전략가였고 그것도 모자라 신종교 지도자였던 묵적이란 인물의 이야기다. 

공자나 노자에 가려서 묵자(묵적)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6년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양자위성을 발사하면서 그 이름을 ‘모쓰(묵자)’라고 붙였던 걸 보면 묵자란 인물이 얼마나 과학에 정통했던 인재였던 가를 반증한다. 


묵자는 블루컬러에 속한 기술자였고 전쟁을 매우 싫어했고 방어전쟁의 전문가였다. 

 

많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힘이 약한 작은 나라가 구원을 청하면 묵자와 그의 제자들은 지체없이 달려가 아무런 보수없이 그들을 지켜 주었다.

 

묵자는 방어술의 천재였다. 우물 속에 큰 독을 넣어 적이 얼마나 가까이 오는지 감지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었고 지금으로 치면 화생방무기를활용한 방어전법도 개발했다. 


소가죽으로 만든 풀무를 화로에 연결해 말린 후 쑥이나 독성분이 강한 풀을 태워서 적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여러 개의 쇠뇌를 단 수레로 한 번에 수십 개의 투창을 발사하는 초기의 대포도 발명했다. 

 

특이한 것은 그렇게 발사한 투창을 도드래로 다시 회수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현대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양자위성을 발사하면서 왜 묵자의 이름을 붙였는지가 이해된다.

 

묵자는 제법 덩치가 있는 종교집단을 만든 신종교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여 살면서 공동경작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했고 엄격한 계율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보면 원시공산주의 사회를 연상하게 한다. 함께 어울려 아껴주고 서로를 이롭게 해주는 것(兼相愛交相利)이 이 신종교집단의 교리였다. 

 

유가와 도가의 틈바구니에서 참 재미있고 쓸 만한 사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종교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 절대적 존재다. 묵자는 당시 시대가 가지고 있던 ‘하늘’ 개념을 차용했다.

 

하지만 유가나 도가에서는 이 하늘이 딱히 인격적인 것은 아니다 보니 강제성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결국 묵자는 ‘하늘의 뜻’을 내세웠고 누구나 부정할 수 없고 고개를 끄덕이는 하늘이란 존재에다 강력하고 분명한 파워를 심었다. 

 

‘하늘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는 하늘의 의지(天志)를 확고하게 한 것이다. 

 

그게 사람들에게 통한 것은 이전부터 임금과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하늘에 대한 믿음이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전국시대 말기에 오면서 묵자 집단은 의리를 지키느라 작은 성주를 돕다가 많이 죽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서는 종교집단인 묵가들을 눈엣 가시로 여겨 싹 다 몰살해 버렸다.

 

어찌보면 이상적이고 어찌보면 과학적이고 어찌보면 사회주의적이고 어찌보면 종교적인 묵자의 사상과 그의 제자들은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성격이 모호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묵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주 적극적이고 활발해서 그랬을까? 


하늘의 뜻을 가만히 기다리고 염원했던 당시 세상에서 묵자는 하늘의 의지에 적극 가담했다.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요소는 적었지만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어 서로를 이롭게 하는 하늘의 뜻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는 사마천으로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갈려 없어지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하고야 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학에서는 하늘이 백성의 눈을 통해 보고 백성의 귀를 통해 들은 후에 백성의 뜻을 살펴 왕을 바꾸든지 해 세상을 개혁한다고 했지만, 묵자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런 하늘의 뜻을 받들어 동지를 모으고 계율을 세우고 고통 받는 약자를 도왔다. 


하늘이 별처럼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얻은 그 수 많은 정보를 처리하려면 바쁘실 터이니 그 시대 천재였던 묵자가 과학과 종교를 겸비해 하늘을 도운 것일까? 현대사회에서 하늘의 눈과 귀는 곳곳의 CCTV가 담당하고도 남는다. 

 

사람들의 생각과 바람 또한 빅데이터가 신속하게 처리한다. 인공위성이 하늘신의 눈과 귀가 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속속 보고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고대인들처럼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원망하는 일인가?


그렇게 되면 하늘도 어처구니 없을 것이다. 물론 한 때는 하늘의 신도 세상이 답답하신 적이 있었다. 

 

신은 자구책으로 자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냈고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생겨났다. 

 

세상에 신의 아들이 오신 것은 자신으로 인해 인간들이 이득을 취하라는 것이었을까? 각자의 소원만을 성취하라는 뜻이었을까? 

 

지구촌 곳곳을 울리는 크리스마스 찬송은 모든 것을 가만히 신에게 맡기고 ‘고요하고 거룩하게’ 지내라는 뜻인가? 


하늘도 바쁘다. 왜 인간만 바쁘겠는가? 

 

묵자처럼 하늘의 뜻을 알아채고 발 벗고 뛰어들어 일할 사람이 절실하다. 

 

우리 각자는 신의 형상(또는 자연의 형상)을 지닌 고귀한 존재다. 

 

우리가 주인이다.

 

우리 손에 온갖 정보와 기술이, 신념과 정의가 쥐어져 있다. 

 

이걸 깨우치려고 세상에 온 분이 예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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