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강의 땅따라 물따라] 땅이 거부한 명당

황종택 기자 | resembletree@naver.com | 입력 2021-07-09 15: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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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강 이동환 풍수원전연구가
요즈음 풍수(風水)를 거론하면 웃어버린다. 시대에 맞지 않는 미신으로 대접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철학에 입문하면서 풍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론을 배우고, 전문가에게 강의도 듣고, 수 십 년 간 산하를 다니며 현장학습 등 체험했지만 무한 경지의 학문이다. 

그런데 풍수지리학을 강의하다 보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토록 좋은 명당이라면 지관들의 조상이나 잘 모셔 부귀영화를 누리고 출세하지, 왜 남의 조상 묘를 점지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풍수의 기초 인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우이독경(牛耳讀經)이지만, 한마디로 개괄하자면 땅 팔자와 물 팔자, 사람 팔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즉 명당이란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돈 많고 권세를 누린다 해도 때가 맞지 않고, 적선(積善)이 없는 사람에게 명당자리 잡아줘도 믿지 않으며, 명당에 결지했다 하더라도 땅이 거부하는 이변이 발생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종교와 흡사하다.

그 좋은 예가 매국노 이완용(李完用) 묘이다. 개인 영달만을 추구한 그는 1926년 비밀리에 신후지지를 전북 익산시 낭산면 성인봉 중턱에 잡아두었다. 장례는 마치 국장을 치르듯 했지만,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진짜 묘는 엉뚱한 곳에 써놓고, 가짜 묘는 3~4군데 만들어놓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매국노라는 국민감정이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후손은 이 땅에 살 수 없어 1979년에 파묘해 화장함으로써 사라졌다. 그 후손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매국노 후손’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어 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화장으로 마무리했다. 파묘 현장엔 낭산면 면장과 경찰관이 입회했는데 목렴(木廉)으로 시신을 감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유골은 화장되어 인근의 장암천에 뿌려졌고 관 뚜껑은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오다 가족의 요청으로 이것마저 모두 없애버렸다. 


이완용 묘지는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으로 이곳에서 영구히 안식하고 싶었지만, 그의 꿈은 헛된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명당을 찾아 들어왔지만 땅이 거부한 것이다. 나라와 국민을 배신하고 파렴치한 매국 범죄자에게 명당은 흉지(凶地)로 변해버린 것이다. 땅은 숨 쉬는 생명체이다. 땅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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