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읽는 경국심서(經國心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12-11 16:34:53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춥다. 첫 추위를 우습게 본 대가로 이틀을 날리고 난 지금도 등이 시리다. 

 언제였던가, IMF의 겨울 이후로 노숙자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사철을 거리에서 자는 사람들. 그들의 겨울은 우리가 상상할 추위가 아닐  것이다. 

 유난히 복지예산이 많이 풀리고 웬만하면 이런저런 혜택을 국가가 주고 있 는데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출현한다. 
 
그래서 또 마음이 추워진다. 

인생 초반에 살짝 봄을 누리고 한파가 몰려와 평생을 겨우 목숨이나 부지하고 간 인재가 있었다. 

그분은 삶의 대부분이 겨울이었기에 다른 이들의 겨울을 눈여겨 볼 기회가 있었다. 

운명이었을까! 외래사상과 종교와의 만남은 그를 들뜨게 했고 거기에서 기울어가는 나라와 버려져가는 백성을 구할 방책을 찾으려 했지만 기존세력들의 철퇴로 꿈은 산산조각나고 형제들은 무참한 죽음을 당한다. 

시대를 무론하고 사상과 종교는 무섭다.

그는 자신을 아끼던 정조의 승하 후 신유사옥에 연루돼 18년 동안의 유배생활 속에서 꾸역꾸역 공부만 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비명에 간 형제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꿈이 스러진 것을 안타까워 하는 일, 집에 남아있는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을 갖가지 당부로 실어 편지를 쓰는 일, 마음수양하는 일 등이었을 것이다. 

임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나라 곳곳을 살피던 암행어사 시절이나 수원 화성을 축조하고 갖가지 발명품을 만들던 시절의 그는 문이과 융복합형 인재였다. 

인문·사회·자연과학의 모든 지식을 두루 갖추고 성군인 정조 임금과 멋진 세상을 만드는 꿈에 부풀었던 젊은 학자였다. 

이제 갇혀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나 할 뿐, 실제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 쓰는 일 밖에 없었다. 

다산 정약용이다.

시대의 끝자락에서 백성의 아픔을 끌어안은 분이다. 

그 마음이 온축돼 쓰여진 책이 ‘목민심서’다. 

목민관은 지방관리(수령)이고 심서는 마음의 책이란 뜻이다.

‘목민(牧民)’은 양을 치듯 백성을 가꾸는 일이다. 

임금된 이가 백성을 자식처럼 챙기는 것은 중국의 공자사상이고 바로 조선의 국시(國是)다. 

나라의 경영은 한 고을에서 시작하고 한 고을에서 끝난다.

작은 고을은 나라가 운영되는 뼈대를 다 갖추고 있다. 

요즘으로 하면 야무지게 만든 미니어처인 셈이다. 

그러니 고을만 잘 돌아가면 나라 전체는 아무 문제 없다. 

그런데 왜 ‘심서(心書)’, 마음의 책인가? 

다산은 지식인의 책무는 자기 마음 수양과 백성 돌보기인데, 죄인이 된 자신이 백성을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런 지위에 있지 못하므로, 그저 마음으로 바라는 일이므로 심서라고 한다고 자서(自序)에다 적었다. 

가슴이 찡하다.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지만 갇혀 지낼 수 밖에 없는 다산 선생의 마음의 울림이 전해온다. 

유배생활 내내 생각하고 적고를 반복한 이 책은 아마도 십 수년 걸렸을 거라고 생각된다. 

1818년 긴 유배생활이 끝났을 때 다산은 이 원고더미를 집으로 지고 와서 정성껏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이 책, ‘목민심서’는 대한민국에 와서 널리 읽힌다. 공직자들의 윤리와 기강의 교과서가 됐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民主)의 나라에서 말이다.

지방관이든 중앙을 맡은 관리이든 청렴이 기본이다. 

백성과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관리는 자신의 몸가짐을 바로하지 않을 수 없기에. 

옛날로 치면 판서 자리를 맡을 후보자와 가족의 청렴과 정직에 문제가 있어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던 게 엊그제다. 

이번 국회에서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챙기느라 바빴다고 한다. 

내년도 예산안을 수정하면서 수십억에서 수백억까지의 나랏돈을 예산 증액으로 끌어댄 의원들의 대부분이 여야의 실세 의원이라고 하니 그들의 능력과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지역구 주민들을 알뜰하게 챙겼으면 그랬을까? 

한편, 예산의 용도가 합리적으로 꼭 필요한 사안인지 아닌지는 그 지역 주민들이 더 잘 판단할 것이다. 

중앙의 세금이 내 지역으로 들어오는 일이 떳떳한지 찜찜한지도 말이다. 

힘 있는 의원들의 자기 구역 잘 모시기는 진정한 목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일이다. 각자 ‘자기 논에 물대기’에 힘쓰면 나라는 어떻게 되는가? 

특히 겨울에 집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어 춥거나 심지어 죽는 ‘백성’들은 어찌되는가?


그래서 이제는 ‘경국심서’가 필요한 가 보다.

 

[저작권자ⓒ 세계로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naver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최문형 교수 다른기사보기
  • 글자크기
  • +
  • -
  • 인쇄
  • 내용복사

헤드라인HEAD LINE

포토뉴스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