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溫故創新] 하늘의 견책을 두려워하다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20-08-13 16: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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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즉위(卽位)하고 나서 늘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염려하는 마음을 다했다. 그러나 홍수(洪水)와 한발(旱魃)이 없는 해가 없었다. 올해에도 경상도 안동(安東) 등지에서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 상한 사람이 매우 많으며, 경기의 고을들에서도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하늘의 견책(天譴)을 깊이 생각하면 모두 나의 부덕(不德) 탓이다. 중외(中外)의 신료(臣僚)들로 하여금 군덕(君德)의 과실과 그릇된 정사와 백성의 고통을 그대로 숨기지 말고 말하게 해,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걱정하는 나의 뜻에 부응하도록 하라.” 

1476년 7월 성종이 의정부에 명령한 내용이다. 

성종은 조선을 이끈 성군이다. 홍수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천지 기운의 부조화로 인한 백성들의 어려움을 잘못된 정치와 위정자의 과실로 인정하는 마음이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천인상관(天人相關) 사상에 근거해 ‘천재(天災)’는 ‘인사(人事)’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천견론(天譴論)’이라 한다. 

위정자가 잘못했을 때 하늘이 재해를 내려 경고한다는 이론이 그 배경이며 따라서 모든 재해는 하늘이 사람(위정자)에게 부여하는 경고장이었다. 

성종 뿐 만이 아니다. 유학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조선의 왕들은 이처럼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살뜰하게 챙겼다. 

<조선왕조실록>의 수재(水災)관련 기사는 590여 건에 달한다. 

 

7~8월은 장마와 산사태, 홍수가 빈번한 시기다. 태조 4년 7월에는 광주(廣州)와 천녕(川寧) 사이에서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는 피해로 왕은 세곡을 면제하고 집집마다 곡식을 주었다. 세종 때에도 서울에 큰 비가 와서 냇물이 넘치고 하류가 막혀서 75가구가 떠내려가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아 통곡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이러한 실정을 가슴 아프게 여긴 세종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내리도록 명했다. 태종 때에는 몇 년간 지속된 동북면(東北面)과 풍해도(豐海道)의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를 막기 위해 한겨울에 미리 산천(山川)에 제사지내기를 명하기도 했다. 일종의 예방책이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 자신의 ‘부덕(不德)’의 결과라고 이야기할 위정자나 정부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민심이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정부 차원이나 민간 차원에서 피해 입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추가예산이나 성금이 마련된다. 

조선으로 보면 호조(戶曹)와 진휼청(賑恤廳), 그리고 향촌자치기구인 향약에서 담당했던 일이다. 

조선이든 대한민국이든 인간이 자연재해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 

수재와 한재 등 자연의 위력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로 남는다. 

다산 정약용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수재나 화재가 있을 때는 나라의 구제법(휼전)에 따라 행하고 적용할 만한 일정한 법이 없을 경우에는 목민관 스스로 백성을 구제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평소에 고을을 돌아보아 수재나 산사태에 취약한 지역은 예방책을 강구할 것을 말했고, 재해가 지난 후에는 백성들을 어루만져 주고 편안히 모여 살게 하는 것이 목민관의 임무라고 가르쳤다. 

지방정부 차원의 신속한 대응이 중요함을 알려준다. 

수재가 발생하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국회의원들과 민심에 민감해야 하는 정치인들이다. 

자신들의 실정(失政) 탓이라고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힘들고 어두워진 국민들의 마음을 챙기는 게 임무인지는 아는 사람들이다. 

수재복구 현장에 걸 맞는 옷차림을 한 그들의 인증샷이 언론에 공개됐다. 

그렇게라도 국민들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면 나름 위안이 된다. 하지만 최근 몇몇 정치인들의 깔끔한 연출사진이 국민의 분노를 불렀다.

몸 사리지 않고 일하는 다른 이들의 대조적인 사진으로 인해 그들의 연출사진은 변명의 여지없이 곧바로 내려졌다. 

자연이 불러온 수재나 한재조차도 자신들의 부덕과 실정의 탓으로 돌릴 수 있었던 통 큰 조선의 국왕들이 그립다. 하늘과 산천에 제사지낸 그들의 정성을 모셔오고 싶다. 백성과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동고동락하겠다는 위정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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