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큼 닭만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교수 | news@segyelocal.com | 입력 2019-07-18 17: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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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겸임교수 
며칠 전 초복, 마른 장마 속 희생제물로 올라온 닭을 먹었다. 그런데 맛이 별로였다. 바로 전날 읽은 책 탓이었을까? 한원채씨 책에 나온 닭이야기 때문에? 

 

한원채씨는 북에서 지식인으로 많은 활동을 하며 살다가 1999년, 자유를 찾아 가족들과 국경을 넘었다. 중국에서 얼마 지나다가 북한으로 다시 잡혀 들어갔고, 지옥같은 감방생활을 거쳐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두 번 더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족들과 재회한 후 그렇게도 원했던 한국행 막바지 순간에 중국 공안에 잡혀 안타깝게도 북송되고 만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탈출했다가 잡히고 또 탈출하고 잡혀서 3개월간 감방생활을 했던 기억을 생생히 살려서 쓴 원고에 이제는 생사를 확인할 길 없는 그의 행적과 심경을 고스란히 전해 두었다. 북한의 감방생활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긍정심리학의 아들러는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통해 인간이 인간취급을 못 받는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나치의 만행을 알게 된다. 한원채씨는 몇 번의 탈출과 압송을 겪으면서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를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막연히 자유의 땅, 동포의 나라 대한민국에 가서 살겠다는 꿈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북의 백성들의 처절한 사정을 바깥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절절함을 갖는다. 급기야는 애초의 소원은 잊다시피 하고 자신이 겪는 이 모든 과정이 동포들의 처절함을 알리는 사명의 오솔길이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의 이런 사명감은 오히려 안전한 한국행에 걸림돌이 된다. 

소중한 원고를 3부 만들어 그 중 2부는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진 일본 기자에게 건네주고는 나머지 1부를 연변의 한국교회에 전한 것이 화근이 됐다. 원고는 그 곳에서 암약하던 북한 프락치에게 고스란히 넘어갔고 그의 생사 또한 그렇게 건네어졌다. 

세 자녀와 부인과 함께 한국행 막바지에 오른 그 순간에 한원채씨는 무참하게 다시 잡혀서 북으로 호송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원고만은 꼭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그의 염원대로 원고는 2002년에 먼저 ‘탈북자’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됐고, 거의 20년을 바라보는 2019년 6월 25일에 그가 그리워한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노예공화국 북한 탈출기’ 라는 제목으로 햇빛을 보았다. 

이 책을 잘 읽기는 단연코 어렵다. 눈은 반쯤 감아야 하고 가슴에 붕대를 묶어 둬야 한다. 한원채씨의 차녀는 차마 아버지의 원고를 수정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일면식 없는 사람도 대면해 소화하기 힘든 이야기를 핏줄인 딸이 어떻게 대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이 책에는 수감자들을 닭 취급도 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감자라고는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들어 굶어죽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중국으로 월경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루에 겨우 한 끼, 강냉이 몇 알에 소금기 없는 멀건 국을 먹고는 간수들의 화를 푸는 샌드백 취급을 종일 견뎌낸다. 

어떤 날은 몽둥이 찜질로 고된 노동을 시키고는 마당에 음식을 펼쳐 놓는데 키우는 닭들이 먼저 주둥이를 갖다 대었다. 닭들을 내쫒는 수감자들에게 쏟아지는 말들은 “너희들이 닭보다 나은 줄 아느냐? 네 놈들은 닭만도 못한 것들이야!”였다. 

▲(사진=뉴시스)

닭들을 쫓을 수 없던 수감자들은 그나마 닭들에게 음식을 강탈당하고 닭이 먼저 배를 채우고 난 찌꺼기를 겨우 먹는다. 그런데 실상은 그게 다가 아니다. 

닭모이라도 먹으려다가 들킨 수감자 몇 사람 때문에 감방 안은 자기교화라는 미명 하에 폭언과 폭행의 피비린내로 물든다. 이 참혹한 일들을 차마 소상하게 기술하기 어렵다. 인류 역사 동서고금을 뒤져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 공화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알려지기 쉽지 않다. 이런 일을 겪은 수감자들이 살아서 바깥 세상에 나온다는 건 기적이니까 말이다. 전문기술인으로 살았고 훈장과 특허를 몇 개씩 받은 엘리트 한원채씨였기에, 그리고 그가 받은 사명이 있었기에, 이 노예공화국의 현장이야기는 그의 염원대로 이제 우리 앞에 왔다. 

평생 사랑의 정치를 세상에 구현하고 싶었던 맹자는 제나라 선왕을 흐뭇하게 칭찬해 준다. 엄마소와 떨어져 흔종의식에 제물로 끌려가는 송아지가 불쌍해서 소대신 양으로 제물을 바꾸라고 명령한 사건을 듣고 나서이다. 

왕의 그런 마음이야말로 왕도정치의 가능성이라고 추켜 세운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왕이 소 대신에 덩치나 가격이 작고 싼 양으로 바꿨다고 하겠지만, 왕의 입장에서는 소는 눈 앞에서 보고 양은 보지 못했으니 그런 게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송아지를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으로 백성을 아껴주면 된다고 한다. 

동류이고 동족인 인간을 소만도 닭만도 못하게 여기는 게 일상이고 다반사인 북쪽 ‘노예공화국’의 실상을 맹자가 알면 무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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