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바다열차', 인천의 새 관광 명물로 자리 잡을까?

박창억 | daniel@segye.com | 입력 2019-09-13 03: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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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는 인천 앞바다에 떠 있는 면적 0.66㎢, 둘레 4㎞의 아담한 섬이다. 생김새가 반달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월미(月尾)’라는 이름이 붙었다. 육지에서 1km 쯤 떨어져 있었으나 일본군이 1920년대 초 돌축대를 쌓으며 내륙과 연결되었다. 그 후 세관 검역소, 측후소, 무선전신국 등이 들어섰다. 지금은 이름만 섬이지 육지와 다름없다.
 
월미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문헌은 숙종 34년(1708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상소문이다.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혔을 때를 대비해 월미도까지 피란길을 새로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앞서 숙종 21년(1695년)에는 비변사등록에 ‘어을미도(於乙味島)’라고 기록돼 있다. 얼미도(孼尾島), 어미도(於味島), 제물도(濟物島)라고 부른 적도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는 자신들의 사령관 이름을 따 ‘로즈섬(Rose Island)’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섬은 역사의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러시아·일본 등 열강들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퉜고, 경쟁적으로 군사시설을 세웠다. 1895년에는 영국 순양함이 월미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군인 448명이 익사했다. 1904년 2월 9일에는 인근 바다에서 러시아 전함이 일본 전함과 부딪쳐 침몰하면서 러·일 전쟁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6·25전쟁의 분수령이 된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때 연합군이 처음 상륙한 곳도 월미도였다.
 
인천시가 ‘월미은하레일’의 이름을 ‘월미바다열차’로 바꿔 내달 8일 정식 개통한다. 월미도∼인천역을 순환하는 월미바다열차는 높이 8~18m 고가 위를 달린다. 월미바다열차 개통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월미은하열차는 당초 2009년 개통 예정이었으나 안전 문제로 백지화됐고, 월미바다열차로 바뀌어 다시 추진됐다. 이 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대표적인 혈세 낭비 사례로 꼽혀 왔다. 개통도 못한 월미은하레일에 1000억원, 월미바다열차 차량 도입에 추가예산 183억원이 투입됐다. 지방자치단체가 치적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그 결과가 어떤지 인천시로서는 혹독한 수업료를 치르고 배운 셈이다. 당초 예정보다 10년이나 늦게 개통하는 월미바다열차가 인천의 새로운 관광 명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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