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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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원 시인 |
염소
이창원
그 애가 하굿둑에서 풀을 뜯기던 염소를 끌고 집에 들어서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을 때
마당 수돗가에서 물일을 하던 그 애 엄마의 퉁퉁 불은 손이 부리나케 쫓아가 그 눈물을 닦아주었을 때
시멘트 벽돌담 너머로 발갛게 부풀어 오른 그 애의 눈두덩이를 보고 나서부터
나는 세상사는 일이란 고집 센 염소와 걸핏하면 부풀어 오르는 눈두덩이와의 싸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창회 날 그 애를 만날 때마다 눈두덩이부터 쳐다보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안 되는 일이라며 모두들 뜯어말려도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가 있는 돈 없는 돈 몽땅 털어먹는 남자를 만나
그 애 아니 그 여자의 눈두덩이 부기는 싸구려 티 나는 화장발 속에서도 사라질 날이 없어 보였다
본인은 숨기고 싶어 했지만 트럭 행상을 하는 남자의 조수석을 탄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트럭은 염소처럼 붙들고 맞버틸 목줄조차 없을 텐데
언젠가 동창회 모임 때는 느닷없이 딥블루 컬러 눈썹 문신을 하고 나타나서 친구들의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 문신으로도 도저히 감출 수 없어 보였던 눈두덩이
오늘은 문득 트럭 조수석에 앉아 밤길을 달릴 그 여자를 떠올리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물건을 고분고분 팔아줄 리 없는 지방도시는 어쩌면 그 여자에게 온몸이 온통 새까맣고 거대한 염소일지도 모르는데
눈두덩이 부기는 언제 사라질지 도무지 알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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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천 출생 ·2011년 서정문학 신인상 ·2015년 시집 ‘이끼의 저녁’ 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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