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미술선생님 영향받아 서양화 전공
연변 학생 세계인으로 성장하도록 교육
학술교류로 교육프로그램 중국에 전수
한국서 작품 활동·전시하며 소통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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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용길 연변대 교수가 세계로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족 학생들에게 작품활동 전 자유로운 사고를 많이 하도록 권유한다고 말하고 있다. |
[세계로컬신문 김수진 기자] 중국 연변 자치주 연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서양화가가 있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서 자아를 찾아가며 그 과정을 그림에 투영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서용길 연변대학교 미술학원 부교수다. 서용길 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해 후임양성과 한-중 간 문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실습기지’를 찾았다. 사람 좋게 미소 지으며 기자를 반기던 그가 예술과 교육과 관련한 질문에는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삶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지 표정의 변화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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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화 ‘神曲’(2005년 작, 65x35)- 승무를 표현한 그림. 단테의 신곡을 제목으로 차용했다. |
- 만나서 반갑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연변대학교 미술학원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인 서용길이라고 한다. 연변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림 그리고 있다.
- 많은 분야 중에 서양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진행됐던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내 대학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 조선족이 대거 거주하는 연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직후 대학에 진학한 첫 번째 세대라고 보면 된다. 그간 고등교육에 목말라했던 사람들로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당시 저희 고등학교 미술선생님 대부분이 서양화 전공이었는데 잘 배울 수 있는 분야로 갈고 닦아야 대학을 갈 수 있었던 만큼 저도 서양화를 전공하게 됐다.
- 흔히 ‘조선족 미술’하면 떠올리는 ‘민족성’을 작품에서 찾기 어렵다.
예전에는 한국적이고 민족적인 주제의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한 주제에 큰 불만이나 의문도 없었다. 민족성이 강조되는 재외동포이다 보니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전남대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에서 머물게 됐는데 경직됐던 생각이 바뀌게 됐다.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보면서 ‘과연 내가 만들고자 하는 작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오래 전 학생 시절 대학교 한 교수님께서 ‘가장 민족적인 것이 반드시 세계적인 것만은 아니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에서 지내면서 그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다. 민족과 사상이라는 큰 틀 속에서 그림 그려왔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깨야 할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가까운 것들, 흔히 지나치는 사물 등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도 그 시기다.
그래서 그리게 된 것이 바로 ‘자전거’다. 이념이나 민족을 넘어 어떻게 그려야 할까 고민하던 중 자전거를 주제로 그린 윤회‘輪回’라는 작품을 만들게 됐다. 중국에선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 등교하는 이들이 많은데 조선족 누구나 추억이 있는 자전거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어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묘사와 설치미술, 판화 등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었는데 관객 반응이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그간 내 안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몸부림’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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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화 ‘空1’(2009년 작, 162x130) -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찾으며 그린 작품. |
- 중국에서 추구하는 미술 성향이 있나?
중국에도 한국의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과 같은 대회가 있다. 각 자치주별로 우수 작품을 선별해 최고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중국은 공산당이 추구하는 목표나 이념에 맞는 작품을 선호한다. 자전거를 주제로 그린 ‘윤회輪回’도 길림성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됐지만 중국 공산당이 원하는 주제의 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더해 민족성을 지켜야 하는 조선족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국에서는 기본기를 특히 강조한다. 사물을 스케치하거나 채색방법 등에 대해 철저히 훈련받는다. 대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등 다양하게 사고하는 훈련은 그에 비해 덜하다.
하지만 중국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경이나 문화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이러한 과정은 필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사고의 자유로움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예술가는 대상을 관객에게 던져줄 뿐이다. 관객이 그 대상을 표현한 그림, 조각, 행위예술 등을 보고 알아서 판단하는 거다. 자신이 무엇을 표현할지 개념을 잡은 후 이를 구현할 재료를 생각하라는 식의 교육을 진행하곤 한다. 자유로운 한국 학생들에겐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조선족 학생들에겐 다소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게 교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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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화 ‘红色记忆’(2013년 작, 162x165- 자전거의 모습을 다양하게 형상화한 작품 ‘홍색기억’. 서용길 작가가 특히 애착을 가지는 작품 중 하나. |
- 한국과의 학술 교류는?
사실 연변대학교 교수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대학 교수 중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와 강의방법을 배우고 한국 학자들과의 교류를 하고 있다. 한국 교수님들도 적극적이다. 이는 우리가 한민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현재 연변대학에서는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전남대학교 등과 학술교류를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한국 교육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어 연변대학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러한 교류 프로그램이 계속될 것이라 보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일단 올해나 내년 안에 한국 내에 작업실을 마련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싶다. 그리고 몇 년 안으로 여기서 전시회를 열어 이곳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물론 교육활동에도 지금처럼 매진하고자 한다. 젊은 학생들과 이야기하며 저도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 놓칠 수 없는 활동 중 하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조선족 수가 줄어들고 중국 문화가 빠르게 침범하고 있는 상황에선 교육자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먼저 배운 우리 세대의 어깨도 무거운 상황이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임양성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한다.
※ 서용길 작가 프로필
-2004. 한국전남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
-1984. <꽃이 피였네> 연변미술전람회 가작 수상
-1997. <봄바람> 중국소수민족 ‘민족백화장’ 은상 수상
-2005. <신곡> 중화인민공화국문화부 주최 중국 ‘제3기 전국화원우수작품전’ 입선 수상
-다수 그룹전 초대전 및 간행물 등 작품 발표
-現. 중국연변대학교 미술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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