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과 분리’ 주제로 이야기·이미지 만드는 이승아 작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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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아 작가. |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예술은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품전시가 개최되고 있으며, 수많은 작업자가 자신의 작품을 탄생 시키기 위해 내적 외적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관람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작가의 작업 결과물인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갤러리에서 작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완벽한 소통이 아닌 순간의 감성 소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변성진의 <예술가, 그게 뭔데?>는 이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예술이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등 예술가 이야기를 군더더기없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구성했다.
관련 릴레이 인터뷰 중 일곱 번째로, ‘결합과 분리’를 주제로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그로테스큐트’ 이승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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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od#8, 53.0x33.4cm, 캔버스에 혼합매체, 2021.ⓒ이승아 작가 |
Q: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회화 작업과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는 그로테스큐트입니다. 그로테스큐트는 그로테스크(grotesque)와 큐트(cute)를 합쳐 만든 활동명입니다. 보통 ‘그로테스크하다’라고 하면 낯설고 기이한 느낌, ‘큐트하다’라고 하면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잖아요. 대극적이거나 양가적인 것에 대한 저의 관심을 드러내고 싶어 둘을 결합했습니다. ‘크’에서 ‘큐’로 이어지는 미끈함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두 발만 생겼을 뿐인데 (크→큐) 서로 반대의 느낌을 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됐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아주 예전에 했던 작업들이 그로테스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그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작품이 그로테스크하다, 난해하다’라는 언급을 할 때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거든요.
저는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큐트’를 붙임으로써 나름의 방어기제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음식집이 간이 너무 심심한데 음식점 이름이 ‘간 빼놓은 집’이면 할 말이 없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저런 음식점은 왜 생겼을까?’하고 나도 한 번 먹어볼까 하는 호기심과 너그러운 마음.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나 난해한 이미지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조금만 더 애정을 갖고 작품을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한 스푼이 담겨있습니다.
Q: 작업 또는 활동 사항이 궁금합니다.
A: ‘결합과 분리’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골렘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이야기가 시작이었습니다. 나의 몸과 생각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불안감은 나에게서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뜯어내고 배출하게 합니다. 뜯어내고 배출된 것들은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이 뒤섞인 덩어리입니다. 덩어리들은 골렘 또는 분신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라나고 번식하는 존재로 기묘한 정원을 이루며 호시탐탐 돌아가기를 노립니다. 골렘들은 주로 조형 작업을 통해 표현됐고 이후 회화 작업에서 계속해서 등장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이어진 작업은 ‘운명 공동체‘입니다. 골렘의 정원 작업이 주체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분리를 통해 골렘과 분신들을 만들어냈다면 운명 공동체 작업은 타자 상실에 대한 불안감을 결합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 작업입니다.
’사랑하는 대상과 영원하고 싶다‘는 마음은 삶과 죽음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말 그대로 운명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같은 운명을 공유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체의 결합을 상상했습니다. 같은 신체를 가진다면, 마치 분리되지 못한 샴쌍둥이처럼 같은 운명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삶은 유한하고 죽음은 무한하기에 사랑하는 대상과 영원함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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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lem, 25cmx25cmx13cm, 2019.ⓒ이승아 작가 |
운명 공동체에 대한 욕망은 위험하고 불순하기에 추상화되고 상징화됩니다. 합쳐지는 두 덩어리는 얇은 선들을 통해 합쳐지는 동시에 쉽게 분리됩니다. 현실에 있지 않은 형과 색의 몸을 지닌 그것들은 끊임없이 결합을 시도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분리되며 슬픈 형상을 이룹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삶은 분리, 죽음은 결합이었다면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분리와 결합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꿈이나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이야기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떠오른 문장은 “생명은 자유다”였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알 수 없는 깨달음을 통해 벅차오름을 느꼈고, 왜 이 문장이 떠올랐는지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레드홀’(붉은 블랙홀)에 대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레드홀을 출입하며 죽음과 삶을 무한 반복하는 덩어리들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그림책과 회화 작업으로 진행 중입니다. 또한 생리라는 소재를 가지고 결합과 분리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그림책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 차차 구체적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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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rple or Violet, 디지털 드로잉, 2020.ⓒ이승아 작가 |
Q: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대중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그것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소통과 세상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을 포함하지만, 꼭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원론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궁금증,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세상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떤 존재이고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존재 이유, 숨겨져 있는 비밀에 대한 힌트들을 발견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내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나를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작업을 공개하고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가 자꾸 뒤로 밀리는 게 고민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이렇게 인터뷰 기사를 통해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런 개인적인 탐구들이 다른 분들께서 각자의 어떠한 이유를 찾는데 약간의 힌트가 될 수 있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Q: 추구하는 작업 방향 또는 스타일이 있다면.
A: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작업하지는 않지만 제 작업들을 돌아봤을 때 일관되게 나타나는 분위기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상과 색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화면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붉은 선과 그 사이 바글거리는 어떤 육신을 가진 형상들이 있었고 그런 이미지들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변주되며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제 이미지는 노동 집약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작업 자체가 제가 남기는 흔적이자 분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마다 손이 많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스타일에 갇히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다이어리를 쓸 때 0.3의 파란 펜으로 작은 글씨를 빽빽하게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0.3의 파란 펜이 없으면 다이어리를 쓰지 못하게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죠. 그 이후로는 0.3 파란 펜을 선호하기는 해도 기록을 한다는 본질을 해칠 정도로 자신을 가두지는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가끔 검정 펜도 쓰고 0.5의 파란 펜을 쓰거나 빨간펜을 쓰기도 하면서요. 그렇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0.3의 펜으로 빽빽하게 쓰인 이전의 다이어리들을 보면 시각적으로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네요. 스타일이라는 것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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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공동체, 162.2x130.3cm, 캔버스에 아크릴, 2020.ⓒ이승아 작가 |
Q: 영향을 받은 작가 또는 작품 또는 영감을 얻는 방법.
A: 어린 시절 읽은 문학 작품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집에 다양한 추리소설 작품 전집이 많았었는데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추리해 나가는 동안 느껴지는 긴장감, 미스테리한 느낌 등에 자주 노출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만화도 명탐정 코난을 좋아했네요. 이 밖에도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이라는 시집을 습관처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장 꼭도의 시집도요. 어린아이들은 똑같은 책을 지루해하지도 않고 읽고 또 읽고는 하잖아요?
저만의 특이점이라면,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나이에 안 맞는 책을 꽤 봤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기형도의 시집도 어린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시였지만(물론 성인이 돼 봐도 난해한 것은 여전하지만요.) 오히려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묘한 느낌을 주며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단어도 모르겠고 내용 자체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과 장면들에서 느낌만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저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는 했습니다.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학교 도서관에서 제 나이에 맞는 책들을 많이 읽었고요. 백년의 고독이나 동물농장,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날개, 해리포터 시리즈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들입니다.
예전에는 소설이나 시, 그림책 등을 읽었다면 요즘에는 제 작업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철학서들이나 지식 정보를 전달하는 책, 작가들의 전기를 다룬 책들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집에 인형들이 가득했던 것도 어쩌면 제 캔버스 화면이 가득차게 하는 데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추측해보고 있어요. 영감을 받은 부분들이 문학이나 인형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 계속 떠올라 일단 어린 시절 영감을 준 것에 대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영감을 얻는 방법은,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저는 혼자 있을 때 주로 글을 씁니다. 매일 매일은 아니더라고 지속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일상의 기록, 감정의 기록, 상상의 기록, 해야 할 것 리스트, 사고 싶은 것 리스트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쓰게 됐습니다. 또 절친한 친구와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메일을 주고받으며 여러 감정과 생각, 생활 등에 대한 교류를 한 것도 소중한 영감의 원천입니다. 가끔 자기 전 카카오 스토리 나만 보기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기록하기도 하고요. 영감이 전혀 떠오르지 않고 속이 텅 비다 못해 납작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이런 오랜 기록들을 읽으면 여러 가지 감정들과 새로운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면 그 시간 동안 느낀 감정과 생각을 사람들과 깊이 있게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세계로 깊이 빠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 다른 작가는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 어떻게 표현했는지 등을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자신의 예술활동에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A: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은 계속 새롭게 정의되는 것 같습니다. 대화를 통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는 그림과 글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예술은 각자가 지닌 표현 방식, 제2의 언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는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자신과 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자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힌트를 주고받는 과정이자 나름의 답들이 예술인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예술이 개별 인간의 개인적인 답들처럼 보여도 사실은 우리가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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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 role, 91.0x91.0cm,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2022.ⓒ이승아 작가 |
Q: 앞으로의 계획은.
A: 세 번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잘 마무리해 공유하고 싶습니다. 2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구구씨네 공중목욕탕’도요. 이 책은 인터뷰에서 말했던 주제들이나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그림책인데요. 인형들과 고양이, 비둘기가 공동목욕탕을 여는 이야기인데 제가 직접 경험했던 일에서 영감을 얻어 동화로 표현한 책입니다.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할 때는 조금 더 재기발랄한 자아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해오던 그림책 작업들을 잘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를 다룬 회화 작업들을 충분히 진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좋은 그림책과 전시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Q: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
A: 권태를 주의하고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업하자.
[인터뷰: 변성진 작가/ 자료제공: 이승아 작가/ 편집: 김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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