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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pixabay |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함을 주면서 혹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덧붙였다. 비행기가 착륙하여 통로를 걸어 나오는데 그는 우리의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무심코 호텔과 성을 알려줬는데 이렇듯 전화를 하여서 정말 너무나 고마웠다. 미국은 호텔에서 숙박인의 이름을 모르면 방 번호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 곳이니까 하마터면 만나지도 못할뻔 했다.
그렇잖아도 친구와 나는 ‘하와이 여행가이드’ 책을 꺼내놓고 교통편을 메모하던 중이었다. 그는 잠시 후에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보면 루빈과는 인연이 정말 기이했다. 그날만 해도 단체 여행 일정대로라면 우리가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해서 그의 전화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늦장을 부린 탓에 단체여행객이 이미 시내 관광을 떠난 후여서 어쩔 수 없이 호텔 방에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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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pixabay |
루빈한테 무턱대고 안내를 부탁은 했지만, 왠지 불안했는데 마침 한국인 남자가 동행하니까 한결 마음이 놓였다. 더욱이 그는 미국 본토에서 유학생으로 8년간 지내서인지 영어는 물론이고, 미국인의 풍습에 대해서도 익숙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짙푸른 수풀 너머로 멀리 보이는 코발트 빛 남태평양은 햇볕에 반사되어 한순간 숨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가로수인 야자수들이 숲을 이루어 차 안에 앉아있는 데도 그 푸르름이 가슴까지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하와이는 무역풍이 불고 파도가 높아서 세계 곳곳에서 서퍼들이 찾아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했다.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를 관광할 때 현지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세계적인 서핑명소인 선셋비치, 샌디비치, 마가푸해안 등… 아름다운 비치가 많다고 했었다.
“어머나! 이 열대어들 좀 봐요!” 나는 너무도 신기해서 소리쳤더니 동행한 우사장이 말했다. "패키지투어를 하면 버스가 여기에서는 정차를 안 합니다. 한국 여행객들이 열대어한테 먹을 것을 아무거나 막 줘서 고기가 죽었거든요." 그 말을 듣자 오늘 아침 게으름을 피우다가 단체여행객을 놓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동양인으로 낯선 이국땅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을 텐데 단지 여행객인 우리한테 이토록 친절하게 대해주다니 정말 더없이 고맙기만 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가 여행의 진미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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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pixabay |
루빈은 좋은 사람이었다. 사실 그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 많은 외국인을 현지 안내인으로 혹은 잠시 동행인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루빈은 왠지 특별했다. 언뜻 봐도 훤칠해 보이는 그의 외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모습 언저리로 은근하게 풍겨지는 뭔지 모를 우울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별빛이 반짝이던 밤, 호놀룰루 교외 어느 이름 없는 바닷가에서 루빈이 말했었다. 이민생활이 너무도 외롭다고… 그는 와이프와 봄베이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그의 와이프는 호놀룰루의 종합병원 의사로 새벽 4시에 출근한다고 했다. 퇴근은 물론 빨리하지만 다음날을 위해 잠을 일찍 자야 하기 때문에 루빈은 늘 혼자 있다고 했다.
그는 자주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면서 겨우 적적함을 달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루빈도 우리랑 같이 있는 게 너무도 즐겁다고 했다. 루빈은 자신이 우리의 가이드를 자청했다고 와이프한테 말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거리에 가로등은 실제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오래전에 원주민들이 고래사냥으로 생활을 할 때 그 기름으로 가로등을 밝힌 것이 유래 되서 그 당시도 관광용으로 가로등 대신에 기름을 태운다고 했던 것 같다. 붉게 타오르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고 걸으면서 우리는 저마다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걸었다.
바닷내음이 묻어선지 살갗에 닿는 바람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날밤 우리는 걷던 길을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낯선 이국땅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보기도 했다. 루빈도 말없이 걸었다. 루빈은 마치 오랫동안 여행을 같이 다녔던 일행처럼 우리와 잘 어울렸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다가도 여행이라는 날개를 달면 엔돌핀이 마구 솟는 것이다. 특히 타지역을 여행하면서 현지인한테 느끼는 인정(人情)은 남다른 것 같다. 호놀룰루 여행도 그저 며칠간 휴식을 하러 온 것뿐이었는데 루빈을 알게 되어 뜻하지 않던 친절한 안내를 받고 여행의 즐거움이 더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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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대전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수필집 '내 마음의 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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