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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수 언론인. |
예나 이제나 악의 근원은 불순종(Disobedience). 권력과 불순종은 신과 인간, 아내와 남편, 자식과 부모, 국민과 통치자를 갈라놓는다. 실낙원은 모든 악의 근원인 불순종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창세기와 실낙원에 따르면 하느님의 요구는 에덴동산에 있는 ‘지식의 나무(善惡果 · The Fruit of the Tree of Knowledge)’와 그 옆에 있던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결국 ‘아담’이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열매를 따먹은 배경은 권력 때문이다.
하느님이 에덴이라는 천국을 만들어 꿀맛 같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보니 사탄은 부아가 났다. 그래서 뱀의 모습으로 이브(히브리어 ‘하와’)에게 접근해 “이브, 그대는 여신처럼 아름답다”며 유혹한다. 사탄은 자신도 그 열매를 따먹은 후에 말을 하게 됐다며 이브를 설득했다. 한낱 뱀도 말을 하게 됐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느냐는 거였다.
“당신이 열매를 먹게 되면 하느님처럼 된다.”
이 말에 기고만장을 했을 것이다. 아담역시 같이 죽고 같이 살자는 심정으로 열매를 먹는다. 사랑하는 짝을 위해 의리를 지킨 것일까. 실낙원을 쓴 목적은 필시 “하느님 방식의 정당성을 인간에게 입증”하기 위해서 이었으리라. 밀턴은 시력이 좋지 않았던 어렸을 적부터 책을 너무 열심히 본 나머지 40대에 완전히 시력을 잃고 ‘실낙원’을 쓰기 시작한다.
밀턴은 한때 올리버 크롬웰(Cromwell)의 청교도 혁명과 공화제를 지지하는 글을 쓰며 크롬웰의 ‘비선’으로 재능을 바쳤다. 그는 국민의 권리를 옹호했고 심지어 폭군을 제거하고 처벌할 권리까지도 국민에게 있다고 믿었다. 찰스 1세가 처형당한 후 밀턴은 결국 크롬웰의 공화정에 외국어 비서관으로 임명된다.
크롬웰의 공화제가 실패로 끝이 나고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밀턴의 인생은 추락하기 시작한다. 밀턴은 일단 몸을 숨겼지만 결국 체포돼 옥에 갇혔고 왕권에 반대했다는 죄목으로 벌금형에 처해진다. 새로 뽑힌 왕은 유명한 작품을 많이 써낸 늙고 병들어 눈까지 먼 시인에게 자비를 베풀자는 정치적 계산 덕분에 극형은 면했던 것이다.
실낙원은 악의 화신 사탄이 어떻게 해서 지옥으로 내쫓김 당했고 또 어떻게 하느님에게 복수를 감행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절망하고 고민하는 사탄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묘사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의 근원들을 탐구한다. 또 사탄에게 속아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신에게 의지하는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지옥에 떨어진 사탄은 활활 타오르는 불바다 속에서 9일간을 지내다가 깨어나는 1편에서 부터 낙원 밖으로 내던져지는 12편까지, 인류 역사와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실낙원은 그렇게 끝이 난다. 그러나 불행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은 천사들로부터 들은 게 있었다.
먼 훗날 누군가가 다시 낙원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그리스도가 사탄의 유혹을 이겨 내어, 잃었던 낙원이 인간의 마음속에 회복되는 것을 묘사한 작품 ‘복낙원(復樂園 · Paradise Regained’은 ‘실낙원 · 失樂園’의 속편으로, 1671년에 간행되었으나 이미 늦었다. 세인의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낙원에서 쫓겨나 ‘에덴의 동쪽’으로 향하는 무리들이 줄을 잇는다. ‘복락’은 결국 깨우침에서 비롯될 터인 즉, 권력을 등에 업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일장춘몽의 덧없음을 그들은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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