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로컬타임즈] 경기도 남양주시 전역이 불법 광고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민간임대주택 ‘월드메르디앙 더퍼스트’의 분양을 홍보하기 위해 설치된 현수막 수백 장이 주요 도로와 교차로, 지하철역 주변까지 무차별적으로 게시된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아파트명이나 건설사명이 아예 빠진 이른바 ‘익명 광고’였으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로 판단된다.
현행 '주택법' 제2조는 모집공고 이전의 청약 유도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또 '옥외광고물법'은 무단 게시물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적용은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현수막은 동일한 디자인에 연락처만 조금씩 바꾼 형태로 무더기 설치돼 있었다. 남양주시 진접역·오남역·별내역·내곡교차로 등 시내 주요 요충지에는 한 지점에만 현수막이 3장 이상 겹쳐 설치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유사한 형태의 현수막이 1,000장 이상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파트 이름이나 건설사명이 아예 빠진 ‘익명 현수막’의 등장이다. ‘안전 전세임대’라는 문구와 연락처만 적힌 현수막은 150장 이상 발견됐다. 시민들이 자칫 사기성 광고에 노출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현수막들은 사전영업과 고객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배포된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직접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전화해 본 결과, 연결된 곳은 ‘월드메르디앙 더퍼스트’ 홍보사무실이었다. 전화 응대자는 “건설사명이 적힌 현수막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회사에서 그렇게 시안을 나눠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명확한 의도를 갖고 광고 형태를 다르게 제작해, 일종의 ‘위장 광고’를 펼친 셈이다.
남양주시 광고물관리팀은 이 같은 현수막을 발견 즉시 철거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하루 수십 장을 제거해도 다시 붙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산과 인력이 한정돼 있어 실효성 있는 단속이 어렵다. 시정명령과 과태료 부과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불법 현수막 게시에 대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광고주 1명당 1건 기준으로 처벌이 이뤄져, 대규모 현수막을 제작해 한꺼번에 게시해도 부과되는 과태료는 고작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
이런 허점을 파고든 건설사들은 현수막 1장당 1~5만 원 정도의 비용만 들이면, 무분별한 광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대규모 홍보를 통해 분양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요즘 분양 시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 고객 선점이 생존 전략”이라며 사전광고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모집공고 이전에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청약을 유도하는 불법 마케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상적으로 광고를 진행하는 업체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정 기업이 규정을 어기고도 마케팅 효과를 누리는 반면, 합법적 광고만을 고수하는 기업은 상대적 불이익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시장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관련 법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대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반복 위반자에 대한 형사처벌 도입과 광고주 책임 명확화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김상호 변호사(광고법 전문)는 “지금의 과태료 제도는 얌체 광고를 막기엔 턱없이 약하다. 불법을 반복하는 광고주에겐 징벌적 처벌이 필요하다”며, “단속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인 불법 광고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시민의 신뢰도도 떨어뜨린다. ‘안전 전세임대’라는 문구를 믿고 연락한 시민이 실제로는 청약 마케팅에 노출되는 식의 ‘기만행위’가 반복될 경우, 사회 전반의 광고 신뢰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시민 윤모(38·별내동) 씨는 “요즘 도로마다 같은 광고가 줄줄이 걸려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며 “어떤 건 아예 어디서 하는 아파트인지도 안 써 있어서 무섭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 건설사들이 이런 방식의 광고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법망을 회피하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기업 신뢰도를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방정부의 단속 의지와 함께, 근본적 해법을 위한 구조적 변화가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광고주 실명제 도입, 반복 위반자에 대한 자격정지 또는 형사고발, 광고물 사전심의제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분양시장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 회복이 핵심이다. 사전청약 단계에서부터 소비자 보호 장치가 작동해야 하며, 광고·홍보 행위에 대한 규제와 교육이 동시에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남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현수막 사태는 단순한 지역 이슈가 아니다. 전국적인 관행으로 확산될 경우, 광고의 신뢰 기반은 물론 분양 시장의 질서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 도시의 얼굴을 망가뜨리는 불법 광고와의 전면전이 필요한 때다.
세계로컬타임즈 / 조재천 기자 pin8275@naver.com
[저작권자ⓒ 세계로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