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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초빙교수, 고전학교 '문인헌' 교수 |
이형기 시인의 '낙화'란 시의 첫 구절이다. 찬란한 봄을 알려주던 화려한 꽃의 은퇴가 시인의 가슴을 두드렸던 모양이다. 한편으로 시인은 꽃의 존재감을, 꽃의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생명의 시초를 만들어 임무를 완수한 꽃의 귀환의 의미를 말이다.
봄의 풍성함과 여름의 무성함을 뒤로 하고 이제 나무는 겨울을 맞으러 오롯이 서있다. 봄에 꽃과의 이별보다 더한 이별을 마악 겪은 나무들의 정경이다. 일꾼인 이파리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냈고 무엇보다 자식인 씨앗들을 분가시키는 헤어짐을 겪은 그들이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인의 ‘이별의 노래’다.
인간의 이별은 아쉽고 애틋한 정으로 돌돌 뭉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산한 초겨울,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을 동정하게 된다. 얼마나 쓸쓸할까?
하지만 나무의 심정은 다르다. 그들은 담담하게 이 계절을 맞을 거다. 아니, 뿌듯하게 겨울을 지낼 것이다. 살들게 길러낸 자식들을 모두 독립시켰으니 말이다.
빨갛고 파랗고 노오란 야들한 껍질 속에 즙이 풍부한 과육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놓은 아기인 씨앗들! 아기들을 멀리 멀리 분가시켜주는 동물들을 위해 식물은, 나무는 섭섭지 않은 선물을 준비했다. 일년 내내 애써 일한 노동의 결과, 온갖 풍파를 견뎌낸 열매들이다.
하늘을 훨훨 나는 새의 뱃속은 열매와 씨앗들의 비행기 일등석이다. 자식들을 글로벌하게 키우고 싶은 식물들은 다투어 새들을 유혹한다. 먼 비행 중 씨앗들은 새의 뱃속에서 싹을 틔우기 좋은 상태가 된다. 식물의 열매에 혹하는 인간들도 자발적으로 씨앗들을 거두어 심어준다.
어디 이 뿐인가? 식물들의 헤어짐에는 바람이나 물도 동원된다. 단풍 열매는 글라이더 같은 날개를 만들어 바람을 타고 유유히 날아간다. 코코넛은 물에 잘 뜨는 섬유질을 갖추고 해협을 넘나들며 당당히 항해한다. 그렇게 식물의 씨앗들이 인간의 도움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무려 2,400km까지 된다.
식물들의 헤어짐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한 헤어짐, (전 지구를 먹여 살릴) 사명이 있는 헤어짐, (어디서든 살아낼) 용기와 지혜를 동반하는 헤어짐!
그래서 그들은 ‘가야할 때’를 알고 정녕 ‘아름다운’ 이별의 길에 나선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미련도 없이 말이다.
최문형(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초빙교수, 고전학교 문인헌 교수)
◆ 약력 -2006-2008 서울사이버대학교 외래교수 -2001-2005 여성가족부 양성평등교수 -2002-2005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2004.9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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