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 위한 옳고 그름, 올바른 관념’ 이선화 작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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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화 작가.(사진=변성진 작가) |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예술은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품전시가 개최되고 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내적 외적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대중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예술가의 작업 결과물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예술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완벽한 소통이 아닌 순간의 감성 소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변성진의 <예술가, 그게 뭔데?>는 이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예술이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등 예술가 이야기를 군더더기없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들어봤다.
관련 릴레이 인터뷰 중 스물다섯 번째로, 옳고 그름이나 올바른 관념 등에 기반한 ‘좋은 그림’을 통해 정의로운 예술을 지향하는 이선화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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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30초 크로키, A3, 흑연.ⓒ이선화 작가 |
Q: 자기소개.
A: 그림, 특히 누드화를 그리는 이선화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었지만, 그 시대의 여느 부모님처럼 미술 계통이 가진 경제적, 실용적인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유로 반대에 부딪혀 어부지리로 건축학과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이후 우쿨렐레, 폴댄스 강사와 수학, 영어 과외 등 잡다한 일들을 전전하다가 퍼포머 이석현 님의 누드 퍼포먼스를 처음 접하고 문화적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복귀했습니다. 또한 거짓과 틀림에 대해 언제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의로운 예술 성향입니다.
현재 이석현 님과 협업해 한국 누드예술 분야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인 소개도 덧붙이자면 청년문화예술단이라는 작은 단체의 대표이자 종합예술공간 미스릴 공방 주인이기도 합니다.
Q: 작업 또는 활동 사항이 궁금합니다.
A: 제 역량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해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드 크로키, 누드사진, 누드 모델링과 퍼포먼스를 하며 인체에 더 집중하고 깊이 빠져들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우리나라 누드 예술 업계의 어두운 현실을 알게 됐는데요.
제 정의로운 성향으로 예술 모델 처우, 열악한 활동 환경 등 잘못된 것들을 지적하며 바로잡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이석현 님과 ‘바로 라이프모델’ 그룹을 만들어 더 발전적이고 세련된 누드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 기획(누드아트전, 퍼포먼스, 워크숍) 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누드퍼포먼스 & 드로잉’인데요. 올해 2월에 했던 원데이 워크숍 마지막에 이석현 님의 누드 퍼포먼스와 저의 라이브 드로잉을 접목한 공연을 일반 관람객 앞에서 했었는데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더 많은 관객 앞에서 꼭 다시 하고 싶은 공연입니다.
가을경에는 ‘미스릴 공방’을 열어 아지트로 삼았는데요.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해줄 특별한 인맥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유지하고 있다 보니, 언제나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만 그래도 옳은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는 에너지에 힘입어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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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k, 5호, 아크릴,ⓒ이선화 작가 |
Q: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나를 표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달란트를 헛되게 소비하지 않는 것. 저에게는 다양한 재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잘하고 가장 진지하게 임했던 것은 평생에 단 하나, 그림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잘 그린 그림이 아닌 지금보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Q: 추구하는 작업 방향 또는 스타일이 있다면.
A: 디자인 쪽 일이라면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지만, 순수예술 분야에서는 정확하게 이거다 할 만큼 와닿는 스타일은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있습니다. 잘못된 성적 관념이나 개인적인 기괴한 취향을 예술로 포장하는 행위를 가끔 보게 되는데 그건 그냥 틀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식적이고 올바른 관념으로 심미성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Q: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떻게 얻나요.
A: 굳이 꼽자면 역시 인간으로부터 얻는 영감이 가장 많았네요. 누드, 인체만큼이나 매력적인 예술 소재도 없지만, 인체가 아닌 ‘인간’ 그 자체에서 얻는 아이디어도 많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온갖 군상들이 다 모여있으니까요. 또 재밌는 건 인체만큼 복잡한 건 없지만 인간만큼 단순한 것도 없습니다. 돌이켜보니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두 제게 영감을 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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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Flow 새결.ⓒ이선화 작가 |
Q: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명언 또는 글귀가 있다면.
A: ‘Don’t dream it. Be it.‘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1975, 짐 셔먼 감독)’에 나오는 노래 중 하나인데요. 저는 어릴 적에 ‘네 꿈이 뭐니? 네 목표는 뭐야?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언제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했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서라기보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하나의 직업이나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어서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꿈을 꾸거나 무언가가 되길 바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꿈만 꿀 게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하면 됩니다.
Q: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A: 사전에 있는 예술에 대한 정의 중에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나 그 작품’이 있어요. 그런데 굳이 거기에 어설프게 제 해석을 덧붙이는 건 더 거추장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저 제대로 된 예술을 하려면 내가 담아내려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더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그래서 그림 연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결국은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길이라는 거죠.
Q: 다른 작가 혹은 다른 분야와의 협업에 관한 생각.
A: 프로젝트의 크고 작음을 떠나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여럿이 모였을 때 일어나는 상승효과를 믿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요. 제가 작업에 있어서 까다로운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협업 제안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여기서 까다롭다는 말은 비효율적이거나 불합리를 종용하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제안에 대한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협업 제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긍정적입니다.
Q: 본업 병행작가와 전업작가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에 대한 생각.
A: 자기 철학이 물씬 담긴 작업을 하고자 하는 작가 중에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수요자의 취향과 상관없이 유명해져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는 이상 계속되는 고민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 저울질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사 생활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또 모임과 단체 활동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건 자기 선택일 뿐입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더 맞는 선택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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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itled 무제.ⓒ이선화 작가 |
Q: 작업자에게 철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철학은 글자 그대로 인생관이고 세계관이죠. 따라서 철학이 어떤 의미인지보다는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를 묻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세상 모일 것은 결국 가장 근원으로 가면 하나로 통한다고 하죠. 철학 안에서도 어떤 부분에 대한 것인지 영역이 너무도 광범위한데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면 제게는 ’옳고 그름‘이 모든 근간에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우선은 바로 라이프모델 그룹의 활동 영역을 더 넓혀나가야겠죠. 예술 모델의 활동 환경 개선과 더 세련된 작업을 남기기 위해서 말이죠. 우리의 몸은 늙습니다. 저를 포함한 한국의 예술 모델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해나가야겠죠.
그래서 올 상반기가 다 가기 전에 퍼포먼스도 한 번 더 기획하고 청년문화예술단 사람들과 그룹전도 열어야 하고요. (그림 그리기도 바쁜데 할 일이 참 많네요). 여담이지만 그동안 써놓았던 글 조각들도 하나씩 모으고 있습니다. 근 몇 년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리가 항상 부족했거든요.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더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Q: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A: 사람들에게 기억되거나 잊히는 것은 저에게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어차피 사람은 잊힙니다. 제가 역사적인 한 획을 긋지 않는 한 제가 무슨 작업을 남기든 언젠가 잊히겠죠. 그저 지금 하는 활동들로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가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제 예술 활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소통하는 지금이 나쁘지도 않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늦기 전에 최대한 많이 해나가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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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드퍼포먼스 앤 드로잉 ’호흡‘, 150x600cm.ⓒ이선화 작가 |
[인터뷰: 변성진 작가/ 자료제공: 이선화 작가/ 편집: 김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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